분명히 배가 고파서 일어났는데 화장실 다녀와서 그냥 늘 그랬던것처럼 컴퓨터를 켰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가 켜져 있는것도 참 오랜만이다.
여기저기 이메일에 쌓인 이메일들만해도 백만개가 넘을텐데
딱히 결심을 한것도 아닌데 내 이글루에 들어왔고
이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니 나는 참 무심히도 모든 포스팅을 삭제했다.
복구할 수 없다는 문구가 떳음에도 참 무심하게 지워버렸다.
내 이글루.
머릿속도 마음속도 복잡해서 딱히 떠오르는 단어조차 없지만
유일하게 내 속이야기를 써내려갔던 곳이고 위로도 참 많이 받았다.
정말... 그러네... 위로도 많이 받았는데...
여길 왜 생각 못 했을까...
부지런하게 포스팅이라도 했었다면 조금은 더 건강한 방법으로 그 지옥같았던 시간을 넘겼을텐데.
감 좋은 분들은 '지옥같았던 시간'에서 눈치 채셨겠지싶다.
그동안 참 많이 위로 받아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늘 좋은 소식이든 나쁜소식이든 거의 처음으로 알리는 곳이
이 이글루여서 몇 자 남깁니다.
결국 그와 헤어졌습니다.
아름답게 헤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에게 연락이 왔다
힘이 없는 목소리로 쓸데없는 말만 주절이다가
마지막에 미안하다는 소리와 함께 더이상은 힘들거 같다고 했다.
그 후, 변명인지 사실인지 거짓인지모를 말들을 30여분동안 들었다.
미칠것 같았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만에 결심하고 내가 연락했다.
안들었던걸로 하겠다고. 묻어두자고 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사실 안들었던걸로 친다해도 그냥 그렇게 이어질 사이는 아니긴 했었다.
가뜩이나 미안한 마음에 미칠 노릇이였을 남자에게
오래된 그의 여자가 '묻어둘께.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라고 하면
그가 많이 불편했겠지. 부담스럽고.
마지막 통화에서는 서로 울었는데
나는 나한테 화가 나서 울었는데
솔직히 이제는 그가 왜 울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 통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우리는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자기반성에 이어지는 자기변명의 시간 그리고 책임회피의 시간.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확신이 없을때가 많았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확신이 생기니?
매일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하니? 여기서 키스해주면 확신이 생기겠니?
라고 진심으로 물으니
지금 남얘기 하는게 아니라 우리얘기 하는 거야! 제발!
이라고 꾸중을 들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닳도록 하면서
마지막 여기저기 남아있던 자신의 짐을 챙겨 그렇게 나갔다.
울지말고 조심해서 가. 라고 하니 그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떡하면 좋으니?라고 울부짖는 그에게
죽어 줄 수 있어?라고 농을 쳤는데 더 흐느끼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양쪽 부모님들의 전화와 방문.
친구의 방문.
그의 동료들의 전화.
다 기억나지 않는다는게 다행인 점이고.
그덕에 나는 다시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어야만 숨을 쉴 수 있다는 슬픈 점이고.
오래된 연인, 실수, 이별, 밀어붙이는 결혼, 뒤통수 맞은 옛여자.
이런것들은 정말 막장드라마에서도 안하는건데
나는 그 지옥같았던 몇달동안 하루 일분일초도 아낌없이 저런 에피소드에 휘말려 있었다.
그 밀어붙이는 결혼에 나에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서 하루하루 고통받고 있다고 해도
이젠 내 일이 아니다. 슬프게도.
끝까지 뻔뻔하게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정말 그를 사랑했다.
그 마지막 날까지도 사랑했다.
울면서 매달리는것도 생각해봤다.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행동이였지만 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달라질건 없으니까.
설사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평생을 미안해하면서 자괴감에 고통받으며 살았을것이다.
끔찍하게 그것도 내옆에서.
그래서 쿨한척 했다. 가시만 있는 말만 뱉었다.
욕설만 없었을 뿐, 그냥 욕만 하고 끝났으면 더 깔끔했었을텐데.
우린 참 많이 달랐지만 그만큼 더 많이 배려하고 생각하며 사랑했다.
나는 후회없이 사랑해서 지금 나는 미련없이 슬프다.



